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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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는데, 도대체 정리를 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전에는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들이, 너무나도 한꺼번에 나에게 쏟아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가슴 한 켠이 무겁고 답답하다. 내 나름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듯하다. 물론 이 책을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회상하면서...

'나도 상당히 음악적 센스가 있는 평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아이는 나 이상이었어요. 아깝다 싶었지요. 어려서부터 좋은 선생을 만나 규칙적인 훈련을 받았더라면, 상당한 수준까지 가 있었을텐데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 아인 그런 규칙적인 훈련을 견뎌내지 못할 아이였거든요. 세상엔 그런 사람도 있어요.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서 재능을 무산시켜 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들요. 난 그런 사람을 여럿 보아 왔지요. 예컴대 괸장히 까다로운 곡도 악보를 한 번 보고는 거침없이 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요. 보고 있는 사람은 그만 압도돼 버리는 거죠. 나 같은 건 도저히 당할 수 없고 말예요. 하지만 그뿐인 거예요. 그들은 거기에서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니까. 그럼 왜 그럴까?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안하기 때문이에요. 노력하는 훈련이 다져져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바로 자기 재능을 망치는 거라구요. 섣부른 재주는 있어서 어릴 때부터 노력 없이도 꽤 잘 해내고, 다들 잘한다 잘한다 추켜 세우니까, 노력 따위는 그까짓 것 하고 우습게 여기거든요. 다른 아이가 3주일 걸리는 곡을 절반 동안에 해치우니, 선생도 이 아인 재능이 뛰어나다 싶어, 다음 단계로 그냥 넘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것 역시 남들보다 절반 동안에 해 치우고, 또 앞으로 나가고...... 그래서 노력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인간 형성에 필요한 어떤 요소를 빠뜨리고 지나쳐 버리는 거죠. 이건 비극이에요. 따지고 보면 나에게도 다소 그런 면은 이었지만, 다행히도 우리 선생님은 굉장히 엄격한 분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나 된거죠.
 하지만 그 아이에게 레슨하는 일은 정말 즐거웠어요. 고성능의 스포츠 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꼭 그런 기분이었으니까요. 손가락을 아주 약간 움직이기만 해도 그애는 짜릿짜릿 재빠르게 반응하는 거예요. 좀 너무 빠르다 싶을 때도 있긴 있지만요. 그런 아이를 가르칠 때의 요령은 우선 지나친 칭찬은 삼가하는 거죠.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는 일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고까짓것 하고 기뻐하지도 않거든요. 이따금 적절한 칭찬을 해주면 그만이에요. 그리고 무슨 일이나 강요하지 말 것. 제 스스로 선택하게 할 것. 앞으로 앞으로 나가게만 하지 말고, 멈춰 서서 생각해 보게 할 것. 그것뿐이죠. 그렇게만 하면 아주 잘 돼 나가는 거에요.'

#레이코 여사의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나'에 대해 생각했다. 노력하는 훈련이 다져져 있지 않다는 말이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다른 애들보다 조금만 노력하면 됐었고 그래서 나 스스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후회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앞으로 나가지만 말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는 것.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멈춰 서서 나는 지금 노력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난 하늘을 올려다보고 과일이 떨어지기나 기다리고 있는 건 아냐. 나느 나대로 무척 노력하고 있어. 너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하고 있을 거야.
-그럴겁니다. 하고 나는 인정했다.
-그래서 말이야, 때때로 나는 이 세상을 둘러보면 정말 한심해져. 어째서 이 사람들은 노력을 안할까, 왜 노력을 않고 불평만 할까 하고 말이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나가사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눈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악착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일 뿐이야. 하고 나가사와는 간단히 말했다. 내가 말하는 노력이란 그런게 아냐. 노력이란 좀더 주체적이고 목적적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거야.
<중략>
그는 담배를 피웠고, 나는 미도리의 부친을 생각했다. 그리고 미도리의 부친은 텔레비전으로 스페인 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노력과 노동의 차이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도 생각조차 안해 봤을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기엔 그는 아마 너무 바빴을 것이다. 일도 바빴고 후쿠시마까지 가출한 딸을 데리러 가기도 해야 했으니까.'

#나또한 나가시와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책을 읽었다고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삶에는 나가시와나 나처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사회에 나가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고,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정말 명쾌하고 즐거운, 하지만 너무나도 맞는 인생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는 밀물처럼 잇따라 나에게 밀려와서,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사자와 함께 살았다. 거기에는 나오코가 살아 있어서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혹을 포옹할 수도 있었다. 그 장소에서 죽음이란 삶을 결말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거기에선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오코는 죽음을 안은 채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마음 쓰지 말아요. 하고.
<중략>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체념으로 익혔다. 혹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감으로 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해가 가면서, 내 주위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이 늘면서,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음은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 어쩌면 인간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것.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 쓰겠습니다.
-특히 와타나베의 편지 좋아해요, 나. 나오코는 다 태워 버렸지만...... 그렇게 좋은 편지였는데.
-편지는 그저 종이일 뿐입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태워 버려도 마음에 남는 건 남고, 가지고 있어도 남지 않는 건 남지 않아요.'

#태워 버려도 마음에 남는 것... 와타나베에게 나오코는 평생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게 느낀 부분들을 되새기고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울 뿐이다. 일 년, 이 년, 해가 갈 수록 책을 다시 읽으며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늘지 않을까 한다. 오랜만에 정말 책이란 것의 소중함과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 그런 책이었다. 하지만 조만간에 또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많은 것은 나에게 안겨주는 이야기들이기에 내가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다. 때가 되면, 나에게도 조그만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또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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